
전기요금이 오를 때마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원전이 있으니까 그나마 이 정도 아니냐”고.
원전은 효율이 높고, 단위 발전비용이 낮으며,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값싼 에너지’의 대표처럼 불려왔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질문을 끝내기에는 너무 빠릅니다.
원전은 정말 싼 에너지일까요.
아니면 싸 보이도록 계산된 에너지일까요.
원전의 경제성을 말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지표는
균등화발전비용(LCOE)입니다.
이는 발전소를 짓는 데 들어간 초기 건설비, 연료비, 인건비, 유지·보수비 등
운영 기간 동안 발생하는 비용을 모두 합산한 뒤,
해당 발전소가 평생 생산할 것으로 예상되는 총 전력량으로 나눈 값입니다.
쉽게 말해
“이 발전소에서 전기 1kWh를 만드는 데 평균적으로 얼마가 드는가”를 계산한 숫자입니다.
석탄, 가스, 원전, 재생에너지처럼 성격이 다른 발전원을
하나의 기준으로 비교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LCOE는 정책 보고서와 언론에서 자주 활용됩니다.
문제는 이 지표에 깔린 전제입니다.
LCOE는 발전소가 계획된 수명 동안 정상적으로 운영된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합니다.
사고 없이, 계획된 기간 동안, 계획된 양의 전기가 생산된다는 조건이
처음부터 계산에 포함돼 있습니다.
이 전제 때문에 LCOE에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피해 비용,
사고 이후 장기간에 걸친 토지 이용 제한과 산업 손실,
지역 경제 붕괴와 사회적 복구 비용 같은 항목은 거의 반영되지 않습니다.
이 비용들은 단순히 누락된 것이 아닙니다.
사전에 정확히 계산하기 어렵고,
손실의 상한을 정할 수 없으며,
책임 주체를 특정하기 힘들어
처음부터 계산서 밖에 남겨진 비용들입니다.
하지만 계산서에 없다고 해서
그 비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금의 전기요금에는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이렇게 큰 위험을 민간 보험은 왜 보장하지 않을까요.
이 지점에서 생각 실험을 하나 해보면 더 분명해집니다.
화재 위험은 민간 보험이 보장합니다.
항공 사고 역시 민간 보험의 대상입니다.
대형 공장 폭발이나 화학 사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건들이 안전해서 보험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위험하기 때문에 보험이 붙습니다.
다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피해 범위에 상한이 있고,
최악의 경우에도 손실 규모를 일정 범위 안에서 계산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보험사는 확률과 손실을 가격으로 환산하고,
보험료를 통해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원전은 다릅니다.
사고가 발생하면 피해 범위는 특정 시설이나 지역에 머무르지 않고,
수십 년에 걸쳐 확장될 수 있습니다.
토지 이용 제한, 산업 붕괴, 대규모 인구 이동,
국가 자산 가치와 신용도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이 경우에는 최대 손실액을 특정할 수 없고,
시간이 지나면 회복된다고 가정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원전 사고는
보험 시장에서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위험으로 분류됩니다.
그래서 원전에는 항상 국가 보증이 붙습니다.
이 보증은 원전을 특별히 신뢰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국가가 보증한다는 것은
대형 사고의 손실 규모가 민간과 시장의 감당 범위를 넘어선다는 사실을
제도적으로 인정했다는 뜻입니다.
민간 보험과 기업의 재무 능력으로는
사고가 났을 때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는 판단이
이미 전제돼 있습니다.
만약 원전 사고가
손실 범위가 예측 가능하고,
피해 규모에 상한이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 회복 가능한 위험이었다면
굳이 국가가 나설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 위험은 시장에서 가격이 매겨지고,
보험을 통해 분산됩니다.
하지만 원전 사고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국가는
위험이 너무 커서 어쩔 수 없이 보증을 서는 역할을 맡습니다.
국가 보증은 신뢰의 표시가 아니라,
민간이 감당할 수 없는 위험이라는 증명서에 가깝습니다.
원전의 또 다른 특징은
비용이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집중돼 있다는 점입니다.
발전이 끝난 뒤의 폐로 비용,
수십 년에서 수백 년 동안 관리해야 할 방사성 폐기물 문제는
현재의 전기요금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습니다.
지금의 요금 안정은
미래 세대의 비용 부담을 전제로 유지됩니다.
이 구조에서는
원전이 언제나 싸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비용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시간 너머로 미뤄졌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전이 싸다는 말은
사실 이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비용만 놓고 보면 싸다.”
그러나 경제에서 중요한 것은
보이는 비용만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위험,
나중에 한꺼번에 터지는 손실,
국가가 대신 책임지는 비용까지 포함해야
비로소 ‘진짜 가격’에 가까워집니다.
원전은 효율적인 기술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직한 가격을 가진 에너지인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원전 논쟁은 종종
찬반의 도덕 싸움으로 흘러갑니다.
하지만 이 글이 던지는 질문은 그보다 단순합니다.
누가 이 위험의 비용을 계산서에 쓰는가.
그리고 누가 결국 그 값을 지불하는가.
원전이 정말 싸다면
왜 그 최대 위험은 항상 국가가 보증하는가.
왜 사고 비용은 시장이 아니라
세금과 공공 재정으로 처리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값싼 전기’라는 말은
끝까지 완성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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