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인터넷 뉴스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이 설탕세 도입을 거론했고,
여당이 관련 법안 발의를 검토 중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참으로 반가운 뉴스였다.
사실 그동안 동네 카페나 빵집에 들러
빵이나 제과, 디저트를 사 먹을 때마다 단맛이 지나치다는 느낌을 자주 받아왔다.
아니 달다고 느끼는 수준을 넘어, 어느 순간에는 쓴맛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때마다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과도한 설탕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것은 아닌지,
이로 인해 장기적인 건강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지 걱정이 들곤 했다.
작년에는 이런 답답한 마음이 쌓여, 설탕세 도입이 더 이상 미뤄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관련 내용을 알리는 짧은 영상까지 만들어 공유한 적도 있다.
나는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한 설탕세 도입을 적극 지지한다.
이 제도는 개인의 선택을 통제하거나 특정 음식을 금지하려는 정책이 아니다.
문제는 이미 개인의 절제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데 있다.
요즘 젊은 층의 비만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소아·청소년 당뇨 환자 역시 더 이상 드문 사례가 아니다.
달지 않은 선택을 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 환경에서,
이 모든 책임을 개인의 자기관리 부족으로만 돌리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이 지점에서 피할 수 없는 질문이 하나 나온다.
이렇게 늘어나는 질병과 의료비 부담은 과연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설탕을 통해 이윤을 만들어 온 쪽인가, 아니면 그 결과를 함께 떠안아 온 개인과 사회 전체인가.
나는 이 문제를 도덕적 비난으로 접근하고 싶지 않다.
다만 설탕을 과도하게 사용해 수익을 확대해 온 구조가
질병 증가와 의료비 상승이라는 사회적 비용을 만들어냈다면,
그 비용의 일부를 다시 부담하는 것은 책임의 문제라고 본다.
설탕세, 혹은 설탕 과다 사용 부담금은 소비자를 벌주기 위한 세금이 아니다.
이 제도는 누가 설탕을 사 먹었는지를 묻지 않는다.
누가 설탕을 얼마나 사용해 제품을 만들어 팔았는지를 묻는다.
부담의 주체는 소비자가 아니라 판매자다.
설탕을 많이 쓰기로 선택한 쪽이 그에 따른 비용을 부담하는 구조다.
이 제도가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설탕을 많이 쓰는 곳일수록 설탕과 시럽을 더 자주, 더 많이 구매할 수밖에 없고,
그 구매량 자체가 곧 세금 부담으로 이어진다.
설탕에 부담금이 붙는다면 설탕 가격은 일정 부분 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설탕값이 일괄적으로 폭등하는 데 있지 않다.
소량으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체감이 거의 없지만,
설탕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구조에서는 그 비용이 누적되며 분명한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데 핵심이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기업의 계산이 달라진다.
설탕을 그대로 많이 사용하면 가격을 올리거나 마진을 줄여야 하고,
어느 쪽이든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반대로 설탕 사용량을 줄이면 세금 부담 자체를 피할 수 있다.
그래서 이윤 계산에 빠른 기업과 산업일수록 가격 인상 대신 레시피를 바꾸는 선택을 하게 된다.
실제로 설탕세를 도입한 나라들에서는 이런 변화가 이미 확인됐다.
영국에서는 설탕이 많이 들어간 음료에 더 많은 세금이 붙자,
주요 음료 기업들이 가격 인상 대신 설탕 함량을 낮췄다.
세금을 계속 내느니 설탕을 줄이는 편이 훨씬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시중 음료의 평균 당 함량은 눈에 띄게 감소했다.
프랑스 역시 설탕을 많이 넣은 제품일수록 세금 부담이 커지는 방식이었고,
기업들은 빠르게 설탕 사용량을 줄였다. 덜 단 제품이 늘어났고,
저당 제품은 더 이상 특별한 선택이 아니라 기본 선택지가 됐다.
멕시코에서도 설탕 음료에 세금을 부과한 이후 소비가 감소했고,
그 효과는 특히 젊은 층에서 분명하게 나타났다.
시장의 자율에만 맡겨두면 기업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법과 제도가 기준을 세우는 순간,
기업은 손익 계산에 따라 본능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설탕세는 바로 그 계산식을 바꾸는 장치다.
금지하지 않아도, 통제하지 않아도, ‘
많이 쓰면 비용이 든다’는 신호 하나만으로 시장의 방향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이미 전 세계 120여 개 국가가 설탕세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선진국을 자처하는 대한민국이 이제서야 이 논의를 시작하는 것은 결코 이른 대응이 아니다.
오히려 늦은 편에 가깝다.
지금이라도 설탕 과다 사용으로 인해 누적돼 온 사회적 비용을 직시하고,
그 부담을 보다 합리적으로 환수해 공공의료와 예방 체계로 되돌리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설탕세 도입을,
미래의 의료비 폭증과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한 현실적인 선택으로서 분명히 지지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과도한 설탕이 일상이 된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문제를 더 이상 개인의 절제나 선택의 문제로만 미뤄둘 수는 없다.
설탕 과다 사용으로 누적돼 온 사회적 비용을 바로잡고,
그 부담을 보다 합리적으로 환수해 공공의료와 예방 체계로 되돌리는 논의를 더 늦추지 말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설탕세 도입은 선택이 아니라,
이미 시작했어야 할 현실적인 대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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